상단영역

본문영역

수필] 파란 낙엽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수필] 파란 낙엽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미디어
  • 입력 2023.12.06 11:15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파란 낙엽

길가를 지나다가 투명봉투에 파란 낙엽이 담겨져 묶여있는 것을 보았다. 바삭바삭한 느낌이 왔다. 손을 대기만해도 부스러질 것만 같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저씨가 청소하고 계셨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낙엽이 길가를 덮고 있으니 얼마나 힘이 드실까하다가 봉투 안의 파란 낙엽에 신경이 쓰였다. 보통 낙엽은 제 색깔을 띄우고 나뭇가지를 떠나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데 파란 낙엽은 바로바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온통 파란 낙엽이 거리를 휩쓸며 다녔다. 살면서 제 할 일 다 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뭔가 미진한 면이 있듯 아직 파란 잎이 바삭거리며 중얼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가장 가슴 아픈 미래 같았다.

쓸쓸한 바람이 낙엽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 때는 추위는 없었다. 따뜻하지만 건조하고 쌀쌀하다는 감정적인 가을의 정취에 젖어 가을비라도 내려줬으면 했다. 아스팔트 가장자리에는 이런저런 이야기처럼 색깔을 띄운 낙엽이 쌓여있다. 잠시 동안의 휴식 같은 시간이 지나갈 즈음 휙 하며 낙엽을 데리고 갔다. “어머나, 회오리바람까지 불잖아, 어디로 가니” 소리쳤다. 낙엽이 이리저리 날리면 왜 쓸쓸함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일까. 가을이 모든 것을 낙엽으로 따뜻한 모든 빛을 나누어준다는 생각으로 나무의 일생을 바라본다. 어쩌다 나뭇잎 바람에 쓸리는 소리와 낙엽 밟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는 아침의 환함을 본다.

낙엽이 너무 이뻐서 주워온 나뭇잎에서 나무의 단단하고 힘찬 위대함을 본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은 절대 가볍지만은 않은 것이다. 무게가 없는 희망이 있을까. 멀리 보이는 것이 아주 가깝다고 느낄 뿐인 것이다. 우리는 낙엽의 생명이 얼마나 길고 영원한지를 모를 뿐이다.

낙엽이 질 때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나무들은 함께 가려고 일시에 나뭇잎을 털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외롭지 말라고, 함께 있으라고 나뭇가지를 스스로 흔들어 한철 나무와 생명을 같이했던 낙엽은 고맙다고 이별 아닌 이별을 가을에 하는 것은 아닐까.

파란 낙엽, 아니 초록낙엽이라고 하는 것을 무심히 보다가 올해는 나뭇가지가 다 보일 정도로 바닥에 많은 잎새가 떨어져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말 못할 이유가 있나보다.

나무는 온도가 내려가면서 광합성작용을 줄이며 엽록소를 분해한다고 한다. 이후 날이 추워지면 에너지 저장을 위해 낙엽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단풍보다 많은 파란 낙엽이 많이 지는 것은 기온의 급격한 변화라는 것이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서 엽록소가 파괴되기 전 ‘떨켜’ 세포층이 생겨 에너지 절약을 위하여 초록 잎이 우수수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여행자는 오로지 상상만으로 여행하듯 겨울을 준비하는 털실을 감아놓은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 따뜻한 털실의 감촉을 느끼듯 파란 낙엽 더미에 두 손을 집어넣어 두꺼비집을 지어보았다. 모래보다 더 미세한 온기가 몸을 덥혀주었다.

단풍들 시간도 없이, 이별할 준비도 없이, 떨어져 쌓여있는 파란 잎새가 바람에 날리면 또 지나간 시간들이 내 맘으로 들어와 포근해지고 따뜻해진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깔깔 웃었던 시절과 낙엽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손으로 받아 소원을 빌기 위해 낙엽을 받으려 뛰어다니던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저작권자 © 경기도민일보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