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수필]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9.04 12:18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는 ‘싸이먼 엔 가펑클’이 1964년에 발표했다고 한다. 우연히 듣게 된 이 곡에 심취되어 고향의 음악다방에서 멋지고 잘생긴 그리고 목소리조차도 마음을 울렁이게 했던 디제이(DJ) 오빠에게 메모지에 ‘The Sound of Silence’를 신청하고 꼭 듣고 싶다는 애절한 내 마음을 건넸다.

‘싸이먼 엔 가펑클’의 잔잔하고 속삭이는 듯한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저 노래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다방 언니가 전해준 내 메모지를 펼쳐보는 DJ 오빠의 표정을 바라보며 꼭 듣게 해주길 바랐다.

그저 듣기만 해도 좋았던 ‘The Sound of Silence’는 지금까지도 애창곡이 되었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그 다방이 생각나면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리고 수줍어지는 것 같다. 친구들과 듣기도 했고 혼자 듣기도 하면서 다방의 분위기에 가슴 뛰는 설렘을 느끼곤 했다.

계절을 닮은 바람결이 지나쳐갈 때처럼 점점 사그라지는 모닥불 같은 무뎌지는 마음이 꼭 서러움 같아 마음이 아파지기도 한다. 바람결에 떠도는 풍문처럼.

어느 해 제주도 여행에서 가이드가 ‘제주도에는 갈대가 없다’고 했다. 해오름 산등성을 올라가고 내려올 때 가을을 알리듯 갈대밭이 펼쳐지고 바람에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 주는 듯 앙증스러운 갈대를 보며 일행은 모두 손을 흔들며 전세버스에 탔었다.

지금도 제주도에서 본 갈대가 떠오르면 정말 제주도에는 갈대가 없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 많은 갈대는 갈대가 아니면 무엇인가. 억새인가 하고 분별없는 생각을 하다가 갈대가 없다면 ‘임금님 당나귀’는 어디에서 들을까.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는 임금님과의 약속을 이발사가 임금님의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가슴에 담아두어 생긴 일을 잘 표현해 준 동화이다. 남의 비밀을 알고 있을 때, 아니면 누군가에게 들은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말을 못하고 참는 고통을 시원하게 뱉어내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심리적인 동화여서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이 다 알고 있는 동화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갈대와 대나무가 없어 비밀을 지켜야 하는 고통을 끝내는 누군가에게 말을 해서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면 분명 정확하지 않은 말이 풍선처럼 커져서 모두는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다정했던 사람들과 사이가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남의 이야기를 되도록 듣지 않으려고 한다. 듣는 순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어딘가에서 외쳐야 하기 때문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되새기며 남의 말을 들으면 곧 잊어버리기로 하고 잊는다. 요즘은 자연적으로 잊힌다. 깜빡깜빡하는 건망증이 있어서다.

가을이 왔는지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분다.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떠도는 소문이 예쁜 물결로 남아 무늬를 그려놓는 기쁘고 즐거운 풍문(風聞)을 나도 들었소 하고 웃음을 짓는 우아한 모습을 보고 싶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되는, 선풍기를 돌리지 않고 기분 좋은 이 시간을 오래 간직하고 덥다, 덥다를 잊었다. 가슴에 쌓였던 더위가 물러가 가벼워진 이 순간 여름은 힘들었지만 가을을 반기는 마음으로 안 좋았던 일들을 다 잊어버리기로 했다.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옛일을 추억하며 ‘싸이먼 엔 가펑클’의 조용하면서 속삭이는 듯한 감미로운 목소리에 떠도는 소문을 마중한다. 느림의 느긋한 시간의 소중함을 맞이하면서 침묵한다.

저작권자 © 경기도민일보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