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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자벌레와 대벌레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자벌레와 대벌레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8.09 13:38
  • 수정 2023.08.0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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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자벌레와 대벌레

밭작물들의 잎이 모두 시들었다. 뜨거운 열기에 힘을 잃고 축 늘어져 있다. 작년만하더라도 이런 모습은 없었다. 운동화 발바닥의 열기가 온몸으로 퍼지고 얼굴은 토마토처럼 빨개지고 땀이 줄줄 흐른다. 일하는 것도 아닌데 잠깐 밭을 둘러보는데도 더워서 고춧잎이 더위에 못 이겨 시들시들한 것처럼 사람의 몸도 열기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질 것 같다. 얼음물을 마셔가며 작물들을 살펴보는데도 뉴스에서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는, 농촌에서는 쉬라는 염려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게 농촌의 일상이다. 무덥고 뜨거운 날씨라고 며칠 밭을 가지 않으면 그새 풀들은 신이 나서 온 밭을 뒤덮고 저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놓고 있다.

밭풀이 숲을 이루었든 말든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무언가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게 순간 보였다. 이 더위에 무엇일까 궁금해서 다가가보니 정말 어릴 때 보았던 자벌레였다. “너도 부지런하구나. 이 뜨거운데 한 걸음 두 걸음 보폭을 재듯 걷다가 더위 먹는 거 아니니” 안쓰러워 말을 걸었다. 자벌레는 놀라서 잎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너무 미안해서 호미로 들어 올려 풀 속으로 놓아주었다. 징그럽고 싫었던 곤충들이 이제는 모든 게 무뎌져서 귀엽다. 주름진 몸에 풀색을 띤 자벌레는 다른 곤충과는 다르게 몸을 접었다 펴면서 앞을 향하여 가는 모습이 한평생 고된 삶을 이어가는 수행자 같기도 해서 더 맘이 간다.

어느 날 집 근처의 ‘세마대’로 동네 분들과 저녁 바람을 쐬러 갔다. 산 아래의 후끈했던 바람과 끈적거리는 바람은 서서히 산바람으로 지친 살갗을 달래주었다.

산은 어둠으로 슬그머니 잠겨가고 시원함 때문인지 모두는 한껏 들떠서 빠르게 산성길을 걸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오가는 사람을 보아온 소나무도 솔향을 내어주었다. 아주 깊은 산속 같은 분위기에서 하늘을 올려보며 별자리와 초승달의 달빛을 보며 환호했다.

몇 번 와본 기억은 추억 속에서 기웃거렸다. 약간의 변화는 그때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고. 하지만 시간만큼은 변함없이 흘렀다. 수많은 사람이 건너왔다 건너갔을 어느 나루터가 떠오르며 지금의 나를 반겨주었듯 소나무들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자벌레다” 우르르 달려가 자벌레라고 하는 곤충을 보았다. 산성길가 밧줄로 이어진 난간에 나뭇가지 같은 거무스름한 것이 낮에 시들어 늘어진 잎들처럼 걸쳐있었다.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자벌레는 아닌데 그분은 자벌레라며 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그 자벌레라고 하는 나뭇가지 같은 것들은 밧줄에 많이도 붙어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희미한 산속이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아도 형태는 또렷했다. 아무리 보아도 자벌레는 아닌데 왜 자벌레라고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나로서도 헷갈리는 마음이 있어 “저 나뭇가지 같은 벌레가 자벌레 맞나요?”, 모두는 “모른다”였다.

누구일까. 무엇일까. 생각을 하고 한참 지난 후 “맞아”하고는 가슴이 설레거나 뛰는 첫 만남처럼 마음과 가슴이 알아보듯. 두근거리는 손가락으로 찾아본 그 낯선 벌레는 ‘대벌레’였다.

확연히 다른 몸을 가졌는데도 누군가는 ‘자벌레’ ‘대벌레’라고 하는 것처럼 첫 번에 알아보아주는 소중한 만남이 늘 기다려지듯 오늘도 무더위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다음의 만남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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