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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항해(航海)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항해(航海)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6.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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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항해(航海)      

나무들이 나뭇잎이 무겁단 말 한마디 없이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비를 맞고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주고 꼿꼿하게 서있다. 조금 뒤로 물러서서 거대한 나무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마을의 입구나 험한 산 아래에는 쉬어가라는 듯 거대한 나무가 꼭 있다. 거인과 같은 그 거대한 나무는 한철을 위하여 희망을 품고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바다처럼.

드넓은 바다는 늘 나를 반겨준다. 하얀 모래와 파란 바닷물을 나무처럼 서서 멍하니 바라보면 잔잔한 물결로 아니면 세찬 파도로 나에게로 온다. 나의 무게에 움푹 파이는 발자국을 새겨놓고 그 발자국에 바닷물이 고이길 기다리다보면 물새들이 바다 위를 날다가 모래에 앉아 종종거리며 돌아다닌다.

이쁜 부표들이 줄에 묶여 경계의 선을 그으며 출렁거리며 쓰러졌다, 일어 섰다를 반복하며 떠있다. 멀리 더 멀리 바다의 끝은 둥글다. 이때부터 나는 바다에 온 것을 실감한다. 저 깊고 먼 곳은 무엇이 있을까.

배를 한 번도 타본 적 없이 자란 나는 배에 대한 동경을 많이 했다. 배를 타면 어떤 마음이 일까, 혹은 파도에 난파된 나뭇조각을 잡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위급한 절명의 순간일까. 공포와 누군가의 도움으로 죽기 직전 구조가 되어 생명의 소중함을 고이 간직하며 살아갈까. 아니면 둥둥 떠다니는 구름처럼 가벼운 몸이 되고 헤엄을 칠까.

타이타닉호의 호화선에서 일어난 일들이 영화화되어 개봉되었을 때 예매까지 하여 관람을 하였다. 암초에 배가 침몰하고 얼음 위에서 구조되기를 기다리며 한 사람씩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장면을 보며 죽음의 공포를 또 한 번 느꼈다.

배를 타면 어떤 마음이 나의 삶에 영향을 받을까 상상하며 처음으로 바라만 보던 배를 타보았다. 제주도를 배를 타고 가서 관광하고 배를 타고 돌아왔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배 뒤로 하얗게 거품이 일며 길게 따라오는 물거품에 나 혼자 배를 타고 항해를 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신기한 마음이 들며 물 위를 달리는 속도감에 자유를 느꼈다. 정신없이 두 손을 들고 소리를 질러댔다. 기뻤다. 살아오면서 쌓였던 온갖 기억이 순간 다 빠져나가는 자유를 만끽했다.

대문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란 것을 많이 생각했다. 읽는 이의 심리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인의 고기잡이 성취감과 자신이 어부의 최고라는 자부심을 결국 이루어낸다는 집념이라고 생각했다. 소설 ‘노인과 바다’는 독보적인 서사 기법을 구사했던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불멸의 고전이라 생각한다. 84일째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는 고기잡이 노인과 소년과의 끈끈한 인간관계와 바다 위에서 큰 고기를 목숨을 걸고 잡으며 하는 독백, 많은 명언을 남겼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죽음과 연결된 인간의 존엄성 등 철학이 잠재한 작품이다. 

그러나 우연히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는 가장 길고 인간의 생애를 되돌아보게 되는 단편소설이 아닌 장편소설이었다. ‘노인과 바다’는 나의 나이에 읽어야 하는 대작인 것이다.

나도 한 척의 배를 푸른 바다에 띄운다. 푸른 물결에 모든 것을 맡기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잔잔한 바다를 꿈꾼다. ‘산티아고’가 잠 속으로 빠져들어 사자 꿈을 꾸듯 바다를 본다. 

“인간은 이기지 못하거든 그렇다고 졌다고 할 수는 없다.”-‘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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