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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오월과 흰 꽃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오월과 흰 꽃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5.3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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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오월과 흰 꽃

아파트 철망 담장을 잡고 오월을 풀어내던 빨간 넝쿨장미가 어제의 비와 바람 때문인지 소복하게 꽃잎이 담장 아래 쌓였다. 아, 벌써 넝쿨장미가 지고 있구나. 오던 길에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철망 담장은 긴 거리는 아니지만 장미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아둘 만큼의 거리는 되었다. 맞은편 가로수로 심어진 이팝꽃은 어느새 하얗게 길가를 향기롭게 하고 그늘을 만들고 한번쯤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감탄을 한다.

우연히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가 “오월에 왜 흰 꽃이 많이 피는지 아세요?” 질문하였다. 모두는 “흰 꽃을 피우는 나무가 오월에 많으니 흰 꽃이 많은 게 아닌가요?” 하였다. 엉뚱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봄이면 나무마다 다른 빛깔의 색을 띄우며 꽃을 피우는 것이라 여겼지 오월이라 흰색 꽃이 많이 핀다고 생각조차 못했다. 늘 봄을 기다리는 것은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는 생명을 바라보며 힘을 얻는 의미가 있었다.

내가 아는 흰 꽃이란 아카시아 꽃, 시골집 뒤란에 꽃잎으로 뭉쳐진 불두화, 찔레꽃,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가로수로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꽃 정도다. 정확하게 꽃 이름을 모르는 흰 꽃도 있지만 “이쁘다”였다.

오월에 흰 꽃을 많이 피우는 생태적인 이유가 있는데 신록이 우거지면 흰색이 눈에 잘 띄는데 벌과 나비는 색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무들은 꽃의 색소를 만드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그냥 흰 꽃으로 둔다는 것이다. 하얀 꽃이 아무런 에너지 없이도 피어난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그것이 이것이구나. 흰색이 녹음의 푸른색 속에서 더 잘 보일 것이고 굳이 현란한 색으로 꽃을 피울 이유가 없을 것이 아닐까. 흰색 꽃은 단아하고 수수한 모습으로 시선을 끌어내고 짙은 향기로 곤충들을 모으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나보다.

자연의 조화로움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흰 꽃은 마음을 하얗게 순수하게 물들이고 어느 때는 슬픈 느낌으로 다가온다. 과학적인 연구결과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어 순간의 행복과 즐거움이 너무 익숙해져서, 너무 지루해져서 무감각해지지 않는 오월이 좋다.

아직은 붉은 빛이 바래지 않고 그대로인 채로 오월을 장식했던 넝쿨장미가 꽃잎을 쏟아내고 있다. 붉은 꽃잎이 길가에 쌓이고 있다. 점점 진해져만 가는 나뭇잎과 여름의 꽃들이 피어날 것이고 오월의 흰 꽃들, 꽃 색깔에도 이유가 있다는 사실과 빛깔의 소리를 마음으로 들을 수는 있는 걸까. 봄의 냄새를 내 기억에, 내 기억처럼, 내 몸 어디엔가 들어차 있을 오월의 향기를 잘 간직한다. 떨어지는 꽃잎은 이별이 아닐 거라는, 쓸쓸함도 아닐 거라는 긴 여운을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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