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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물 한 줌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나물 한 줌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4.2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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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나물 한 줌

  

지인께서 벚꽃 보러가자고 초청을 하셨다. 그러나 그날 약속이 있는 날, 먼 밭에 풀을 뽑고 과일나무에 거름을 주기로 했기 때문에 꽃놀이를 갈 수가 없었다. 

버릴 게 없던 시절과 너무 버릴 게 많은 풍요로운 시절인데 거기다가 꽃도 참 많다. 늦은 봄 꽃잎이 바람에 떨어지다가 길가를 맴돌며 쌓이는 곳, 마음의 꽃동산이다. 보아도보아도 싫증이 안 나는 무수한 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푸른 보리밭 옆집 할머니께서 안 보이셔서 물어보니 요양병원으로 가셨단다. 순간 정신이 아찔하다. 밭에 갈 때마다 교회 가신다고 교회 버스를 기다리시거나 허리에 와대를 매고 밭을 매셨다. 그러다 그것도 힘드신지 툇마루에 앉아서 나를 맞이해주셨다. 옆에 앉으며 잘 계셨냐, 밥은 잘 챙겨 드시느냐는 등 형식적인 물음을 던져도 반가워하시며 잘 지냈는데 요즘 몸이 아프시다고 하셨다.

뭐든 주시려고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나 과자 같은 주전부리 할 것을 내놓으셨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하시며 지팡이를 짚고 밭으로 가신다.

“인제 그만 쉬셔요” “그러지 않아도 아들이 같이 살자고 하고 일은 하지 말라 해” 그러시면서도 풀을 뽑으셨다. 아슬아슬했다. 앞으로 고꾸라지시거나 주저앉으시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 동네는 모두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다. 서로 왕래도 없는 것 같다. 그럴 것이 마실을 가시고 싶어도 힘도 없고 걷기가 불편하니 자식들이 와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앉아 계시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누워계시기도 힘이 드시는데 간신히 일어나서 밖을 바라보거나 기어가듯 밭을 가꾸거나 하시는 것, 이것이 일상이 돼 버려 적막한 집을 지키고 계신 거다.

할머니와의 만남은 할머니 집 옆에 몇 년 전에 밭을 매입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정정하셔서 농사일을 그럭저럭하시고 계셨다.

밭과 집은 너무 멀어 여행가는 맘으로 출발했다가 힘이 다 빠져서 돌아온다. 마음은 늘 안타깝다. 할머니는 잘 계신지 일 년에 두 번 가는 밭은 풀밭이 되었겠지 하며 상상한다.

할머니는 언제나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으시다. “잘 왔다” 하시며 서운함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몸짓으로 몸을 지탱하시며 자주 와야지 하신다. 이 말씀이 전부다. 

나는 곧장 밭으로 가서 풀을 베어내고 지금도 수풀 같은 대나무는 바람 소리를 내며 점점 밭을 점령하고 있다. 갈 때는 오늘은 꼭 대나무를 다 잘라놓고 와야지 하지만 가보면 또 다른 대나무가 자라나서 무성하다. 도대체 대나무를 이길 수가 없어서 밭 안쪽으로 나온 대나무만 대충 자르다보면 해가 기울어 일하다 말고 오게 된다.

지난 며칠 전 대나무를 자르러 갔다가 할머니 큰 아드님을 만났다. 두 내외가 나물을 뜯었는지 다듬고 있다가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대뜸 할머니는 언제 퇴원하시냐고 물었다. “이제 못 나오셔요” 점점 더 악화가 되고 파킨슨병까지 생겼다고 하셨다. 언젠가도 빈집을 보니 마음이 아팠었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오면 잘해주라고 부탁을 하셨단다. 그 말에 눈물을 훔쳤다. 딸도 아닌데 그 정신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쉽고 앞으로 빈집이 될 할머니 집을 생각하니 더욱 할머니가 뵙고 싶었다. 다 마음뿐 아드님께 건강히 지내시라고 전해드리라고 하면서 울먹였다.

되돌아오는데 언제 삶았는지 고사리나물과 달래를 검은 봉투에 담아주셨다. 너무 미안해서 받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 계실 때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음료수나 김밥을 사다드렸는데 집에 안 계신 후로는 빈손으로 갔기 때문에 너무 미안해서다. 오늘도 우연히 아드님과 첫 대면을 한 것이고 성격 밝으신 아드님은 할머니의 근황을 많이 얘기해주셨다.

미안한 마음으로 나물을 받아들고 꼭 할머니가 뭐든 챙겨주신 그것 중에 나물이 제일 많았는데 아드님이 한 줌이라도 더 주시려고 꾹꾹 눌러주시는 모습이 할머니 같았다.

돌아오는 고속도로 길가에는 분홍빛 벚꽃 잎이 날리어 차 앞 창문에 달라붙었다. 아마도 할머니가 보내준 나물 같은 향기가 나는 꽃잎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 다음엔 꼭 뵙기를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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