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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186 / 우호태 시인·영화감독

기고] 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186 / 우호태 시인·영화감독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4.17 13:21
  • 수정 2023.04.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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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태시인·영화감독
우호태시인·영화감독

 

내가 나를 만드는 거야

글제는 경험을 바탕으로 내 나름대로 정리하여 대학교 강단과 여러 사회단체에서 강연한 주제다.

소목으로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로 말을 이었다.

사족을 달면 ‘나’란 존재는 광대한 우주에서 둘도 없는 신비스러운 존재인 까닭에 제때 제 모습으로 피워냄이 살아야 할 이유다. 그 모습을 피우려 오감과 생각을 버무려 쉼 없는 연단이 필요하니 내가 하는 일(직업)은 방편이 아닌가 싶다.

어릴 적 또래들과 어울리는 놀이마당에 지나가는 어른들이 자주 들려주시던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놀거라”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여섯 마디 살아온 세월을 새김질하니 그 말품이 태산의 높이요, 너른 대양이겠다. 심오한 철리(哲理)는 아니나 나를 만들어가는 치열한 노력이 함의되었기 때문이다.

가칭 ‘천년의 노래’ 단편영화 촬영지인 무지개다리, 망해루, 횟집, 뜰을 찾아다니느라 온종일 부산하던 몸을 어둠 속에 뉘었다. 밤이 깊어가며 토막의 생각들이 이어져 내를 이루고 강물이 되어 흐른다.

다섯 마디에 이른 날들이었겠다. 망가진 심신을 치유하고자 10여년간을 수시로 집을 나서 가파른 '기(氣)’를 다스리려 숱한 길에 들었다.

봄에는 진달래 핀 산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 산야를 누볐다. 여름날엔 햇볕 아래 걷느라 뜨겁게 달구어진 몸을 하천 다리 아래 누이고, 밤에는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며 눈을 붙이던 날들이 오롯하다. 

물안개 피어나는 새벽의 고요 속에 맞는 생각은 마치 가을날 담장 아래 제 모습 피워낸 한 송이 국화꽃이요, 추운 겨울날 하얀 눈발 속에 걷는 길은 구도자 모습이었으려나! ‘집시 여인’처럼 길 따라 중년의 초상화를 환히 그리던 날들이었다. 부풀리면 ‘동의보감’의 허준, ‘천일록’의 취석실 우하영, 난고 김병연, 고산자 김정호 등 선인들의 부르튼 발길이 내 어둠의 길을 환히 비추어 나름 고독의 기쁨을 맞은 날들이었다.

‘기(氣)’를 보태어 말을 늘이면 내가 만들어가는 내 삶은 ‘기테크’인가 싶다. 용기, 근기, 사기… 등 흔한 생활어 ‘기’의 제때 운용이 나를 나답게 제 모습을 만들어가니 말이다.

불을 밝혀 책장을 넘기던 소년의 총기(聰氣)와 두 눈에 담은 청년 시절의 뜨거운 ‘정기(精氣)’가 젊은 날의 나를 만들어가는 힘이다. 

인생 마루턱에 올라선 시기는 어떠한가? 중년에는 아마 이웃과 어울리는 ‘화기(和氣)’요, 노년은 베풀어야 할 ‘심기(心氣)’가 아닐까? 여섯 마디 넘어서보니 만만치 않은 ‘기테크’다.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서기까지 무려 70여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하시지 않던가! 말을 튀기면 어린 날에 침 바르며 펼쳐보던 무협지 속의 주인공, 절정고수도 운기조식(運氣調息)으로 그에 다다르지 않는가? 내 삶의 결도 기(氣)와 상응하니 그간과 앞날의 맞춤의 기의 운용이 나를 만들어가며 이웃과도 어울릴 힘이다

“님이 오시나보다” 4월20일은 ‘곡우’이다. 풍요를 가져올 봄비 내리는 절기(節氣)란다.

그새 “님 가시나보다” 4월 봄비에 전국 곳곳에서의 산불과 거리의 외침도 잦아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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