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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구석진 길가의 작은 가슴 고운 꽃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구석진 길가의 작은 가슴 고운 꽃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4.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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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구석진 길가의 작은 가슴 고운 꽃

늘 그렇다. 성급함에 후회하는 것.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을 보면 봄옷을 꺼내어놓고 겨울옷은 치워버리는 것.

꽃샘추위가 살금살금 오더니 초겨울 날씨로 살얼음이 얼 것 같다.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어야 했다. 조금만 있다가 옷장 정리할 걸 후회했지만 별수 없이 다시 겨울옷을 상자에서 꺼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4월도 오기 전에 봄 잔치를 크게 치르고서야 다시는 서둘지 말자 다짐했다. 4월의 사나운 바람을 왜 잊었을까.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 아직은 흐드러지게 봄꽃은 안 피었지만 담장 아래나 건물 아래 양지바른 곳엔 꽃이 피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에 냉이꽃. 단추만한 민들레꽃, 어디에서 왔는지 보라색 제비꽃이 고개를 내밀고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모든 시선이 모아지고 감탄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다. 담장을 넘어온 화사한 개나리꽃이나 산수유꽃과 비교하기 힘든 생강나무꽃도 있지만 이 작은 꽃들의 색은 좁혀오는 시선을 아는지 한껏 웃음을 보내준다.

길가 가로수 아래 비좁은 틈새에서 자기들의 얼굴을 하루하루 다르게 보여주고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수많은 잡념을 지워주고 있다. 어느 분이 제비꽃이 소복이 피어있는 꽃 앞에 앉아서 “나는 이 보라색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뛰어, 소녀가 된 거 같아”하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순간을 우리는 살아있음을 감사해한다. 그 앞을 지나치던 수많은 발자국이 행복해지고 “벌써”하며 지나온 옛이야기를 밝히기도 하고 봄이라는 계절에 감정을 맡기기도 한다.

나도 척박한 땅에서 생명력을 예쁘게 하늘거리며 바라보아주는 제비꽃을 좋아한다.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 ‘아티스’가 아름다운 소녀 ‘이아’의 진실한 사랑을 모른척하자 ‘이아’가 죽어 제비꽃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지만 자기네끼리 모여앉아서 소곤거리는 그 모습이 너무도 좋다. 어딘가를 의지해서 새싹을 틔우고 함께 살아가는 화려하며 고상한 보랏빛을 마음 어디엔가 간직하게 되어서다.

꽃을 피우기 좋은 환경을 바람을 타고 찾아다니다가 우리 동네 가로수 아래에 자리 잡고 꽃을 피워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나뭇가지에 꽃부터 피는 꽃나무가 있고 잎부터 나오고 꽃이 피는 나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잎을 먼저 피울 것인가, 꽃을 먼저 피울 것인가 하는 것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도 인생의 과정에 있어 중요한 시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기도 한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더라도 구석지고 척박한 곳에서 웃음을 선물하는 들꽃에게 따뜻한 손길과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삭여냈으면 한다. 아시는 분이 몸에 혹이 자라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악의 순간이라고, 말할 힘이 없다고 했다. 

어두운 얼굴빛에 지금이 “최악이야”를 잠시라도 잊고 벗어나고 싶은 최악의 순간을 아주 작은 소망을 키워나가는 제비꽃과 민들레꽃처럼 내게도 작은 힘이 있다고 용기를 내었으면 한다.

차갑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바람 속에서 꽃을 피우는 들꽃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전령이라고 믿어지는 순간이 내게 느린 미학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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