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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벽달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기고] 새벽달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3.2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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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새벽달

잠을 설치고 밖을 보니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에 새벽달이 하얗게 떠있다. 저 반쪽 달도 나처럼 밤을 설쳤나 점점 작아지는 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죽을 것 같던 그 추위 속에서 새싹을 밀어 올리는 뿌리를 그리며 점점 환해지는 하늘에서 사라져가는 달을 오래된 기억 속 긴 밤을 떠올렸다. 겨울의 긴 밤 같은 저 달은 어디로 가는 걸까.

저녁달은 많이 보았다. 무더운 여름 더위를 식히려 마당으로 나가면 서쪽에 별과 함께 떠있었다. 반쪽짜리 달이지만 그 빛은 강렬했고 마음 깊숙한 곳으로 빛을 채워주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하며 친구들과 노래를 불렀다. 달은 점점 우리와 같이 커서 둥글게 밤하늘을 밝히며 하늘 가운데로 멀리 올라갔다.

보름달이 뜨면 장독대가 생각난다. 사발에 물을 가득 담아 자식들의 안위를 빌던 엄마가 기억 속에 남아 달이란 말 못할 소원을 이루어주고 시골의 밤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다. 겨울의 차가운 달빛을 기억한다. 고요한 시골의 지붕 위를 지나가는 밝고 얼음보다 차가운 빛이 집안에 스며들면 방문을 열고 달을 바라보았다. 그 처연하듯 차가운 달빛은 봄을 향하여 가는 봄바람 같은 것이었다. 봄이 되어 봄바람에 쌓이고 섞여 배꽃을 더욱 하얗게 밝혀준다는 이조년의 평시조,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를 읊조리기도 했다.

달빛과 배꽃의 관계처럼 우리는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산다. 오늘은 행복하고 내일은 그럭저럭 하루가 흘러가고 배꽃이 달빛을 타고 쏟아 내려지는 밤은 신작로의 밤길이 다가온다. 시골 버스가 지나가면 먼지가 배 밭으로 온통 들어와 배꽃 위에 뽀얗게 화장을 하고 수줍어하는 소녀의 모습이기도 했다. 배나무 꽃을 바라보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투명한 저 푸른 하늘빛을 따라 속도를 알 수 없이 흘러가는 새벽달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가 장독대에서 빌던 소원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듯 반쪽도 채우지 못한 달을 보며 말 못할 내 속마음을 말하고 말았다. 어쩜 나도 엄마니까 가만히 바라보지 못하는 조급함이 후회와 미련이 밀려왔다. 차라리 오래된 기억들을 담고 사는 것이 나를 바로 세워주는 변화하는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을 위로하는 진정한 삶이라고 달빛에 묻는다.

새벽이 스스로 물러가고 곱고 따스한 햇살이 손등에 앉는다. 소음도 잠에서 깨어나 모두를 깨우며 활기차게 지나간다. 꽁꽁 얼었던 마음에 단비를 내려 온통 연둣빛이 온몸을 물들여주기를 기다린다.

새벽달도 빛을 감추고 멀리 가버린 지금 백목련은 단정히 꽃 피울 준비를 한다. 잎이 돋기도 전에 가느다란 가지에 꽃망울을 달고 꽃을 피울 시기를 기다리듯 오늘도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봄이 와있음을 숨을 쉬며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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