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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해조곡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해조곡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2.0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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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해조곡

옛날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했다. 꼭 같은 시간 속의 이야기는 똑같지는 않아도 나 혼자만이 충분히 이해하고 추억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문득 같은 시간 속처럼 이해되고 떠오르는 것은 익숙한 경험이라든가 젊은 시절의 후회 같은 너절한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가 이미 멀어진 시간 속을 헤집어 놓을 수도 있는 너, 나와의 이야기, 혹은 그러지 않아도 아픈 마음이었던 누군가 물어보지도 않았고 묻혀있던 이야기와 삶을 혼동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어서다.

얼마 전 자주 다니는 길에서 또 버스를 잘못 탔다. 걸어왔더라면 10분이면 충분할 시간을 한 시간이 넘게 신도시를 돌고 돌아서 제자리가 아닌 우리 집 앞에서 내렸다. 버스를 타면서 당연히 집으로 가는 버스라고 확신을 하였다. 한 정류장을 지나면서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또 잘못 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돌아서 다시오면 다른 버스를 타면 되겠지 하고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그런데 낯선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더니 계속 아파트 숲을 지나고 달리다가 버스가 정차하였다. 그때 손님들이 우르르 짐을 챙기고 일어서더니 모두 내리는 것이었다. 여기가 마지막 정류장인가보다 하고 그냥 앉아있는데 기사님께서 왜 안 내리냐고 하셨다. 창피하기도 해서 버스를 잘못 탄 것 같은데 여기서 내려야 하느냐고 물으며 다시 돌아나가서 역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기사님은 뒤를 흘긋 쳐다보시더니 “생긴 것과 다르게 차를 잘못 타느냐”하시며 웃으셨다. 차를 잘못 탈 것 같지 않은데 왜 탔느냐는 것이다.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는데, 10분 정도 정차를 했다가 우리 아파트로 돌아가니 그냥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시간도 많은데 기다렸다가자 하는 생각을 하였다. 돌아보았자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느냐하며 한숨을 쉬었다. 버스를 잘못 타는 이유는 길 반대편 정류장에서 타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못하고 버스 번호만 같으면 홀짝 올라타고 다른 곳으로 가서 기사님이 내리라고 하면 내리고 있으라고 하면 있으니 버스 한번 잘못 타면 한나절을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다.

그때 버스의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음이 서글퍼지고 가련해지는 옛 노래였다. 듣기만 해도 슬퍼지는 가슴 아픈 이별의 노래가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어디서 듣던 노래인데 기억을 더듬어가며 생각을 하며 공연히 마음이 가라앉으며 노래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아랫집에 사는 언니 딸하고 우리 딸이 잘 놀고 있는, 그렇다고 나하고는 어쩌다 마주치면 눈인사 정도 하는 사이의 언니가 생각났다. 그때는 모든 게 어렵고 힘들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면서도 억척스레 본인의 일은 철저히 잘하며 순박하고 순진하게 풍요롭진 못해도 꿈을 안고 살았다.

어느 날 뜬금없이 우리 집으로 그 언니가 왔다. 한번도 가깝게 지낸 적이 없어 의아해하고 있는데 노래방을 같이 가달라고 웃음 띤 얼굴로 쑥스럽게 말했다. 속으로 너무 놀랍긴 했지만 시골 살면서 오죽 답답하면 이럴까 생각했다.

낮에 노래방을 여는 곳이 없어 몇 군데를 돌다가 드디어 낮에 노래방을 하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맨 처음 그 언니가 부른 노래였다. ‘해조곡’ 나는 처음 듣는 노래고 낯선 노래였다. 

노래를 부르다 쓰러지듯 앉아있는 나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는 펑펑 울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가엾고 애처로움에 같이 엉엉 울면서 내 삶도 뒤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지, 저 언니와 다를 것이 무엇인지하며 더 서럽게 울었다. 그러다 마주보고는 실컷 웃고 속에 맺힌 무언가를 모두 쏟아내고 집으로 와서는 또 서먹서먹하게 지내다가 나는 이사를 왔다. 

그 노래를 들은 이후 그 언니가 생각난다. 무슨 일이었을까, 무엇이 그리 힘들었을까.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사연은 무엇이었나 하는, 밉지도 정도 들지 않는 그 언니도 내 나이쯤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사님께서 “오늘 구경 많이 하셨네요” 하셨다. “네, 기사님 덕분에 관광한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셔요.” 버스가 떠나고 집으로 오면서 오늘을 기억할 날이 있을 거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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