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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스카프 한 장의 행복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스카프 한 장의 행복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1.3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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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스카프 한 장의 행복

몇 해만인가. 겨울 같은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한파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것에 대해 연민 같은 느낌을 받는다. 포근한 겨울이 지나가면 어떤 미련이 아쉽게 남아서 수월하게 겨울이 지나갔다고 안도하기도 하고, 아니면 겨울이 없어졌나하는 엇갈리는 겨울에 대한 향수에 젖게 된다. 스치듯 내린 눈이 인도에 살짝 쌓이고 그 위를 얼음길로 만들어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지는 것, 아니면 날이 풀릴 때까지 집안에만 있는 것, 추위는 싫지만 무섭지만 않은 겨울의 정취를 보고 있다. 나뭇가지에 얼음꽃이 피고 눈꽃이 피어 산속을 걷는 풍경에 스스로 추위를 동경했나하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약속이 있어 상가를 지나다가 스카프를 예쁘게 진열해놓은 여성복 가게를 지나치게 되었다. 다시 되돌아와서 가게로 들어가서 둘러보게 되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카프가 다양하게 걸려있었다.

친절하게도 가격까지 붙어있었는데, 어머나 너무 저렴하고 좋아보였다. 한 장을 목에 둘러보았다. 사장님은 이쁘다고 이 스카프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추켜 세워주었다. 그때부터 선택의 기나긴 시간과 싸워야 했다. 이것도 이쁘고, 저것도 이쁘고 좀처럼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순간 집에 있는 스카프들이 생각났다. 스카프를 또 사게 되면 짐스러워질 것만 같았다. 실질적인 생각이 번쩍 들면서 목에서 스카프를 풀어내고 냉정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얼마나 스카프가 많다고 망설이나하는 생각도 스쳐갔고 사버릴까, 나가버릴까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때 몇 명의 동네 분들이 나를 보았다며 가게로 들어오셨다. 북적북적 시끌시끌 정신이 없어졌다. 모두들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는 거울 앞에서 감탄 어린 목소리로 소녀가 된 듯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는 우르르 밖으로 나와선 이쁘다는 둥 세련됐다는 둥 잘 샀다고 만족해했다.

직사각형 긴 길이의 회색 바탕에 빨강색으로 입체적 문양이 있는, 목에 두르면 두툼한 묵직한 모양이 나는, 조금은 화려하고 촌스러운 스카프다. 길이감이 있어 마음대로 묶어도 되고 접으면 사각의 스카프가 된다. 다행인 것은 광택이 없어 그나마 무난했다. 길게 목에 걸면 세련되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상가의 거리에 알록달록 스카프를 맨 여인들이 줄을 서서 수줍어하며 왁자지껄 활보하였다. 누군가 이 명품 스카프를 자랑해야 하는데, 누구한테 하지하며 활짝 웃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이 순간만은 영원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 영원한 것은 없겠지만 마음만은 영원하다고 역설한다. 훗날 지금을 기억한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유대 문헌 ‘미드라쉬’에서 솔로몬-살아가면서 모든 힘든 것도 기쁜 것도 한때이다. 스카프 한 장에 기뻐하고 흐뭇해하고 젊음을 안고 따뜻하게 모진 바람 막는 것도 순간이고 날아갈 것은 마음이 드는 것은 한때의 행복이리라.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연가곡인 ‘거리의 악사’를 듣는다. 마음 저편 추운 날 노인이 거리에서 손풍금을 연주하는 모습이 스카프에 곱게 싸여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마을 저편에 손풍금을 연주하는 노인이 서있어?/곱은 손으로 힘껏 손풍금을 연주하고 있네?/얼음 위에 맨발로 서서 이리저리 비틀 거리네/조그마한 접시는 언제나 텅 비어있고?/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네?/개들은 그를 보고 으르렁거리지만?/그는 신경도 쓰지 않네?/오로지 연주를 계속할 뿐, 그의 손풍금은 멈추질 않네?/기이한 노인이여, 내 당신과 동행해도 될는지?/내 노래에 맞추어 당신의 손풍금으로 반주를 해줄 순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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