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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제삿밥과 달무리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제삿밥과 달무리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1.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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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제삿밥과 달무리

명절이 지나갔다. 명절 며칠 전부터 음식 장만 걱정이 컸는데 딸 내외도 시댁에 일이 있다고 먼저 다녀갔다. 예전과 달리 부부들이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명절이 두려운 존재가 되고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 젊은 며느리들이 많다고 하는 방송을 보게 된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제사를 모시고 명절에 며느리 역할을 잘하지는 못해도 그러려니 하고 산다.

옛날 음식을 할 때는 가사노동이었다. 모든 것을 집에서 장만하고 나머지 제수는 장에서 사왔다. 콩나물, 숙주나물을 기르고 떡에 묻힐 콩가루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릴 모든 음식을 만들었다. 우리 집은 종갓집은 아니었지만 명절이나 제사 때면 며칠 전부터 엄마를 따라 큰집에 가서 음식 준비와 음식 만드는 것을 보았다. 정월에는 집에서 떡국떡을 만드는 것도 보았다. 어린 나는 모든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고 먹을 것이 많으니 신이 나고 좋았다. 맨날 제사였으면 명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동네 결혼, 초상, 환갑, 생신 등 많은 잔칫날이 있으면 구경도 하고 음식도 먹고 환갑잔치 때는 온 동네가 흥겹게 잔치 분위기에 휩싸였다. 음식 장만하고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맛을 내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도 못했고 잔칫날 잔칫상에서 먹으면 그만인 호강에 겨운 날이기만 했다.

음식 준비를 거들기 시작하면서 딸의 갈등은 시작이 되었다. 먹기만 하면 되던 이 음식을 손님 대접하는 위치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이 여자들의 차지였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부엌을 지키고 있다가 손님이 오시면 상을 보아놓고 바쁘게 오락가락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일을 해야 했다. 집안일이 힘겹고 어렵다는 것을 안 것이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속에서 뭔가가 올라왔다. 갖은 핑계를 대고 집에는 늦게 들어가고 아프다고 거짓말도 했다. 친구는 잔치 소리도 듣기 싫다고 했다. 

명절이나 제삿날은 아버지께서 온 집안 식구들이 제사에 참여해야 한다며 큰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어린 나는 아침부터 엄마 손을 잡고 큰집으로 갔고 온종일 여기저기 다니며 제사 음식 만드는 것을 보았다. 자연스럽게 음식을 배우게 되어 몸에 밴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제사가 끝나면 내가 제일 먹고 싶은 사탕 옥춘을 점찍어두었다. 그러다 잠이 들어 식구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고 나만 남아 울며불며 집으로 온 적이 있다. 무서움도 모르고 오직 집에 가는 생각만하다가 돌다리를 건너다 빠지기도 하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희미하게 떠있는 달을 올려다보면 하얀 달 테두리가 희미하게 온 동네를 비추고 나무 그림자가 길게 자라서 나를 따라오는 것 같고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가 나타날 것 같은 무서움에 간신히 집에 오면 대문은 활짝 열려 있고 대청마루에 올라서며 더 크게 울면 “영이야 이제 오냐, 얼른 들어와라” 엄마는 방문을 열어주셨다. 아무 말도 못하고 엄마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맛있는 제삿밥도 못 먹고 옥춘도 못 먹었지만 큰어머니께서 광목보자기에 옥춘과 곶감, 밤을 싸놓으셨다가 주셨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명절 기억 때문인지 나는 딸들에게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로 했다. 모든 걸 혼자 하는 습관이 되어 맛이 있든 없든 격식이 들어가는 음식은 옛날을 떠올려가며 조리하고 전 부치고 명절 음식 몇 가지는 할 수 있기에 명절이 되면 마음 편하게 음식을 준비하게 된 것 같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에서 ‘함께하는 설 차례 간소화’ 안을 발표하였다. 차례상 간소화를 강조하며 전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제사 음식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것은 제사상 형식보다는 조상님들께서 즐겨 드시던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제사 음식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명절 때나 먹는 음식이니만큼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조상님들을 떠올리면서 밥도 짓고 음식도 만드는 다복한 이야기와 덕담으로 명절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덕분에 친척도 만나고 가족 간의 정도 간직하며 옛날 무쇠솥에서 끊는 탕과 하얀 쌀밥 냄새가 내 마음을 고향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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