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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처음 보았을 때 너는,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처음 보았을 때 너는,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2.12.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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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처음 보았을 때 너는, 

“엄마 이게 뭐야” 딸들이 손가락으로 거실 바닥을 가르쳤다. “뭔데 그래”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물었다. 시력이 나쁜 나는 자세히 보아야 물체가 선명하게 보인다. 실내에서는 더욱 그렇다. 딸들은 무섭다며 화닥닥 방으로 들어가며 방문을 꽝 하고 닫더니 슬그니 열면서 “엄마 조심해요”한다. 

다 큰딸들이 수선을 떤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특별하게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뭐가 있다고 저리나 싶어 아직도 사춘기 소녀인지 아나봐 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오려 하는데 뭉뚝한 나무토막 같은 것이 여기저기 거실 바닥에 붙어있었다. 놀란 가슴이 사라지기 전인데 저것이 무언가 싶었다. 거실 바닥 색깔과 거의 비슷하여 확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형광 불빛에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꿈틀이 같은 물체였다. 딸들처럼 징그럽고 소름 돋는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몇 해 전 베란다의 화분에 심은 꽃이 다듬은 나물처럼 깨끗하게 줄기만 남아있었다. 그때도 ‘이상도 하네. 이게 무슨 일이지’하며 혼자 마음속으로 물었었다. 화분을 가까이 끌어내어 줄기를 가까이서보니 뭔가가 뜯어먹은 것 같은 흔적이 보였다. 그냥 놔두면 다시 잎이 돋아나겠지 하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화분의 식물들이 시들시들하고 잎들이 날카로운 이빨로 뜯어 먹힌 자국이 매일 조금씩 나타났다. 잎이 하나도 없는 꽃은 이유도 모른 채 말라 죽고 말았다. 이러다 화분의 식물들이 다 죽겠다 싶어 화분에 뿌리는 약을 사다가 뿌리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화분부터 살폈다. 환기도 자주 시키고 신경을 썼지만 아무런 약효가 없었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상했나,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가을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자 잎이 봄처럼 돋아나고 싱싱해졌다. 기온이 내려가 거실로 화분을 모두 들여놓았다. 그 후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꽃들은 잘 자라주었다.

꼼짝 못하고 내려다보았는데 쫑긋 귀 같은 것이 돌출되어 있고 기어간 자리에는 끈적거리는 액체가 길게 묻어있었다. 너무 징그러운 몸통하며 거머리 같은 모양이 무섭기까지 했다. 아이들처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비닐장갑을 끼고 휴지를 두껍게 말아 몸통 위에 올려놓고 집어서 버려야 하는데 어디다 버릴지 몰랐다. 밖으로 던져버리면 휴지가 바람에 날아갈 거고 누군가 지나가다가 머리 위에 떨어지면 안 될 거 같았다. 궁여지책으로 떠오른 생각은 변기에 넣고 물로 흘려버리면 될 거 같았다. 비위도 상하고 징그러운 그 물체를 네 마리나 잡아서 변기에 넣어버렸다.

화분을 거실로 옮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찜찜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기억을 끄집어내 모양과 크기 등 아는 분께 물어보았다. 그분은 웃으며 “놀랐겠네”하며 설명해 주었다.

민달팽이란다. 화분 흙속에 살면서 뿌리도 갉아먹고 밤이면 기어 나와서 잎도 갉아먹는단다. 화분의 흙을 갈아주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하셨다. 그럼 화분의 꽃들이 죽은 것도 그 민달팽이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팽이는 집이라도 지고 다니면서 살아가는데 이 추운 겨울에 옷도 없이 미끈둥한 몸을 이끌고 먹고 사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는 걸까.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민달팽이를 처음 보았을 때 너무 놀랐고 징그러웠다. 태어날 때부터 그 모습으로 태어나 그렇게 자랄 때까지 숨어서 생명을 유지했을 텐데 가엾다는 연민이 솟아올랐다.

창밖은 눈송이가 날리고 하늘과 땅 사이의 여백을 메우고 있다. 온통 하얀 풍경으로 색칠을 하며 쌓이고 있다. 첫눈의 속삭임으로 민달팽이 길고 긴 발자국을 따라가 본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미안해. 이제는 눈에 띄지 말고 꼭꼭 숨어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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