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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껌껌하지?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껌껌하지?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2.11.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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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껌껌하지?

광안리해수욕장 밤바다의 국화꽃 전시는 파도 소리와 잘 어울려 화려하고 향기로웠다. 밤을 수놓은 불꽃이 하늘을 향하여 날아오르다 활짝 꽃을 피우고 바다로 사라졌다. 밤하늘과 국화꽃은 모래와 깊어가는 가을밤의 따뜻한 온기를 해변에 곱게 뿌려주었다.

몇 년 만에 와보는 부산은 많이 변해있었고 날씨는 따뜻했고 온화했다. 집을 나서는 나에게 딸은 두꺼운 옷을 챙겨가라고 했다. 부산 날씨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울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바다와 바람은 잔잔했고 약간 더웠다.

다음날 해운대의 한 호텔 창문 밖을 내다보며 해맞이를 하자고 새벽에 바다로 나갔지만 벌써 해는 바다 위에 하얀빛을 띄우며 떠있었고 어젯밤을 화려하게 불빛을 보내주던 바닷가는 덕장처럼 얽혀진 작은 전등이 달린 전깃줄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바다와 파도 소리, 먼지처럼 고운 바닷가 모래는 어젯밤 광안리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여행객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멀리 보이는 작은 섬을 향하여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그 소리를 삼키는 파도 소리는 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오고 하는 사이 구름이 해를 가려 어두워졌다. 잠깐씩 찬바람이 불어 몸을 움츠리며 바닷가를 걸었다. 차라리 겨울의 몰아치는 높은 파도를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데 친구가 이럴 때는 파도 소리만 들리는 동영상을 찍어야 한다며 굳이 나를 똑바로 세우고 내 휴대전화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아무 소리도 말고 서있으라고 했다. 모래에 발이 빠지면서 몸은 기울어지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젊은 남녀들은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고 손을 잡고 해운대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데 가만히 서있자니 어색하고 쓰러질 것 같았고 내 모습이 너무 촌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유명한 해운대의 바닷가에서 멋진 배경을 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모래에 발이 빠져 비틀거리며 이리저리 뛰듯 걸으며 ‘down by the salley gardens’를 흥얼거렸다. “버드나무 정원 옆의 언덕에서 사랑하는 이와 나는 만났죠. 그녀는 아주 작고 눈처럼 하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갔죠…”-월리엄 예이츠.        

맛있는 싱싱한 회도 먹고 마린시티의 멋진 건물도 구경하고 고가도로의 아찔함도 느껴보며 ‘꽃분이네’ 가게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마음껏 수다도 떨며 ‘셀리’처럼 하얀 발로 부산을 여기저기 눈부신 웃음을 흘리며 1박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왔다.

언젠가 ‘로댕의 위대한 손’ 전시회를 간 적이 있다. 미술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숨을 죽이며 바라보았다. 남성의 튼튼한 근육과 고심에 찬 얼굴 표정과 얼굴을 받치고 있는 커다란 손이 부각되었다. 놀란 것은 조형물이 아주 거대하고 웅장했다. 그림으로만 보던 조각상은 사람의 실물 같았으며 일어나 걸어 다닐 것만 같았다. 다른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었는데 특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앞에는 많은 사람이 심각한 얼굴로 오래 바라보고 있었으며 로댕의 약력과 삶의 이력을 읽으며 지나간 세월의 흔적과 시대의 흐름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신체의 모든 곳이 중요한 곳이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지만 예술로 표현했을 때는 신(神)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관람하고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미술평론을 이제는 인문학 미술평론이라 한다. 그림이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사상과 삶 인생의 전반적인 역사적인 면모를 함께하여 인간과 그림 속의 시대적인 흐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예술성을 평가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음악과 고대의 건축물 그리고 그리스 신화와 현대인의 생활을 비교 관찰하는 것도 시간과 시간을 연결하는 고리가 될 수 있다면 운명이라는 것, 바꿀 수 없는 정해진 신(神)들의 은신처를 찾아 떠나보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듯 나는 풍요로운 색감에 만족하고 빛의 음영을 사랑한다. 즐겁고 기쁨이 ‘생각하는 사람’의 고뇌 속에 녹아있는 것은 아닐까.

인생의 시간 속에서 어둠과 밝음이 몸에 배었는지 깜깜하던가 껌껌할 때 컴컴하다는 일상 속의 빛과 고단함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동영상 속의 내가 어둡게 보일까봐 염려하여 한 말 같다. 

“껌껌하지?” 묻는다. “아니 안 껌껌해” 동영상 속의 나는 함박꽃처럼 웃으며 파도 소리와 내 목소리와 친구의 목소리가 9초의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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