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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배냇저고리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배냇저고리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2.11.0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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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배냇저고리

외손녀가 태어난 지 200일 기념 잔치를 한다고 딸 부부가 통통하고 이쁜 아기를 안고 왔다. 이름을 지을 때도 작명가한테 까다롭게 사주를 넣어서 짓고 애지중지 안고 있던 예빈이를 나에게 안겨줬다. 이쁘지, 이쁘지 하면서.

예빈이는 이름 때문인지 예쁘고 함박웃음을 얼굴 가득 담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간신히 앉아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옹알이 같이 노래를 하는 듯하여 더욱 귀엽다. 가끔씩 세워보면 힘 있게 서있다. 웃기도 잘하고 잘 울지도 않아서 더 예쁜가보다.

외손녀 200일 축하 파티를 한다며 온 식구가 다 왔다. 꾸역꾸역 들고 들어오는 아기 생활용품을 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한마디로 트럭으로 한 차는 되는 것 같다. 이름도 모르는 물건도 많고 처음 보는 것들도 많았다. 사용 방법조차 알 수가 없다. 얼마나 있다가 갈지 모르니 알아서 먹이고 입히고 하겠지 하며 아기만 안아주고 놀아주었다. 11년 만에 집안의 경사라 여기며 울어도 칭얼대도 이쁜데 안아주면 팔이 너무 아파서 업어주려고 하니 아기 업는 띠만 있었다.

포대기만 있으면 아기 키우는데 부족함이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기 업는 띠로 아기를 업을 때면 정신이 없다. 이리 끼우고 저리 끼우고 순서가 있어 더 어렵고 한쪽 끈이 길어지면 한쪽 끈은 짧아지고 나는 못하겠다고 아기를 내려놓고는 포대기를 사오라고 했더니 딸은 옛날이야기만 한다며 깔깔 웃었다. “너는 그렇게 컸어.” 뭐가 우스우냐 하고 소리를 높였다. 모든 게 못마땅했다. 

옛날 내가 내 자식을 키울 때는 나름대로 아기에게 좋다는 음식을 찾아서 먹이면 최고의 육아법(育兒法)이라고 생각했다. 이유식이 수입되어 그 비싼 이유식도 사다가 먹였다. 그래도 부족해서 또래 엄마들과 아기들이 잘 먹는 음식을 함께 만들어 나누어 먹이기도 했다. 그때는 서울에 살았는데 아기 엄마들이 많았다. 아기를 집 앞에 안고 나와서 성장발달을 비교도 하고 아기에 대한 정보도 자연스레 교환하고 서로 아기도 봐주었다. 아기엄마들도 만나면 반가워하며 시장도 함께 다니고 음식도 만들어 같이 먹었다. 거의 날마다 남편들이 출근하면 기다렸다는 듯 어느 집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는 아기를 업고 달려갔다. 아기 돌보고 키우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이 유아기를 무사히 보냈다. 

친정엄마가 손수 재단하고 바느질을 하여 만들어 두었다가 딸이 아기를 낳기 전 삶아서 햇볕에 말려 가져오셨다. 헐렁헐렁해서 입히기도 좋고 아기를 다룰 줄 모르는 아기엄마에게는 최상의 옷이었다. 목욕을 시킨 아기가 젖을 많이 먹어 배가 볼록하게 나오면 느슨하게 옷고름을 매어주면 되었고 융의 부드러움에 아기는 새큰새큰 잠을 잤다. 입히기도 쉽고 벗기기도 쉬웠으며 모양은 예쁘지 않아도 땀을 많이 흘리는 아기에게 보온성과 흡수성이 좋았다. 지금과 달리 나는 배냇저고리로 아기를 키웠다. 

어디서 들었는지 배냇저고리를 시험 볼 때 몸에 지니면 합격한다고 해서 몇 십 년을 보관했었다. 얼마나 귀한 배냇저고리인가. 태어나서 처음 입었던 옷이고 온갖 정성으로 만든 옷 아닌가. 부모님이 그립고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 배어있는 옷이다.

큰딸이 시험 보러 갈 때 생각이 나서 찾아보니 누렇게 변색했어도 배냇저고리를 꺼내어 배에다 대어주며 “네가 아기 때 입던 배냇저고리인데 몸에 지니고 시험을 보면 붙는다더라” 했더니 저도 불안하고 안정이 안 되는지 교복 속에 불룩하게 넣고는 아무 말 없이 시험을 보러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시험을 보러 갈 때도 옷 속에 넣고는 시험을 치렀다. 그 덕분인지 취업을 해서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다.

결혼하고 딸이 짐을 챙겨 갈 때 배냇저고리 속에 돌 반지를 넣어서 보자기에 싸서 주었다. 내 몸 한쪽을 떼어내어 주는 것 같은 아픔이 왔다. 잘 간직하라고 하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딸도 나처럼 우리 외손자 손녀에게 내가 만들어준 것은 아니라도 배냇저고리를 물려주었으면 한다. 귀하고 귀한 보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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