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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풍경소리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풍경소리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2.10.1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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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풍경소리   

나도 모르게 찾아온 나만의 소리는 내 몸을 허공에 매달았다. 대롱대롱 위대한 힘에 의해서 흔들릴 때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치켜 올라간 처마 끝 아슬아슬 떨어질 듯 달려있는 단단하고 견고한 자그마한 공명이 나를 사로잡고 허공을 흔들며 잔잔히 퍼져갔다.

잘게 부서진 먼지 같던 소리들은 결집을 하여 모양을 만들고 형체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불당 지붕을 지탱하게 하는 대들보나 기둥보다도 더 힘찬 울림이 자유롭게 흔들렸다. 속세를 떠난 작은 종은 붕어가 되기도 하고 곡예사가 줄을 타듯 긴 줄로 이어져 퍼렇게 녹이 슨 풍경은 처마에서 맑은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부딪쳐서 내는 소리는 어느 소리보다 맑은가보다. 어느 사찰을 가보더라도 거의 같은 모양의 풍경이 달려있다. 어탁, 운무 등 새벽을 깨우고 불심을 깨우치라는 가르침 같은 거대한 동종을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정이 스며있다. 모진 바람과 계절의 풍파에도 변함없는 아름다운 소리를 널리 보내고 있다.

풍경이라고도 하고 첨령, 첨마, 풍령(風鈴), 풍탁(風鐸) 여러 이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작은 종 안에 쇳조각을 달고 붕어로 추를 달아 매달아놓은 것인데 사찰에 풍경이 없다면 가을이면 건조해져가는 마음에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찰의 대웅전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의 그림 불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 의미조차 모르지만 탑이나 처마 끝에 달려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에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풍경이 있다는 존재부터도 몰랐었으니까. 

예전부터 사찰에 매달려있던 풍경이 가을하늘에 가냘프고도 여리게 소리를 내는 것이 여름의 천둥과 번개와 같이 우렁차게 들리기 시작한 것도 내게는 조금의 불심이 자리 잡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처마 밑에서 단청을 바라보며 청동의 푸른색이 멀리멀리 이리저리 붕어를 달고 흔들릴 때 비로소 마음의 안정이 슬그머니 내게 스며들었음을 느낀다. 가만히 귀 기울여야 들리는 청량한 소리가 가슴에 안아 나를 따라온다는 느낌, 오랫동안 듣지 않아도 내 몸 어디에선가 가만히 조용히 침묵으로 나를 일깨워주는 것은 아닐까.

어제 세차게 불어온 가을바람은 오늘을 정신 차리라는 듯 기온이 뚝 떨어졌다. 들창을 내리고 눈꼽재기창에 눈을 대고 밖을 내다보듯 푸른 잎들이 온 산을 꽃 피우는 단풍이 눈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좁은 마음이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눈꼽재기창이 생각나고 가을이면 슬퍼지는 마음을 풍경의 가슴에 이는 소리를 기억하며 지나간 세월을 아름다웠다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도 마음의 위안인 것이다. 여름내 단장했던 풍경이 겨울의 찬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더 멀리 더 멀리 투명한 소리를 밀어내면 내가 앉아있는 이곳까지도 와서 궁금했던 숲속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풍경소리를 품고 가을을 맞이하며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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