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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고향의 하늘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고향의 하늘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미디어
  • 입력 2024.03.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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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고향의 하늘

현관문을 여는 순간 따뜻하고 포근한 바람이 나를 감쌌다. 밖으로 이끌리듯 나왔다. 햇빛에 눈이 부신 감촉은 아기의 살결 같았다. 부드럽고 보드라운 곱디고운 바람을 만져보고 싶었다. 물결 위를 내려앉아 물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봄빛이었다.

갑자기 숨이 막혀오는 듯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이렇게 봄볕이 좋은데 부모님이랑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씨감자 싹을 잘라내시던 모습이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큰언니한테 전화하니 바쁜 일이 있어서 못가니 네가 그렇게 가고 싶으면 다녀오라 했다. 마음의 병이 생기면 안 된다고 하시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가방에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과자와 음료수, 사탕 등 눈에 보이는 대로 담아 들고 택시를 불렀다. 가면서 마트에 들러 정종과 포도도 샀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면 온몸이 노곤하고 잠이 오듯 반겨주실 부모님 생각에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졌다.

도착했다고 기사님이 내리라고 하셔서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잠깐 과수원만 보고 내려올 테니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니 오래 있지 말고 빨리 오라고 하셨다. 과수원은 벌써 갈아서 흙은 포근포근하고 정갈하게 가지치기도 끝내어져 꽃피기만을 기다리는 수줍은 아가씨였다.

죽을힘을 다하여 배나무 사이사이로 뛰었지만 잘 갈아진 흙에 신발이 파묻혀 넘어질 듯 넘어질 듯하였다. 부모님 산소는 멀기만 하고 발걸음은 느려지기만 했으며 숨이 차고 긴장감에 땀이 흘렀다.

간신히 부모님 산소에 술을 올리고 가지고 온 과자며 음료수를 차례차례 상석(床石)에 정성 들여 올려놓았다. 절을 올리고 산소를 돌아보는데 그리움이 사무치듯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일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부모님이 너무나 애처로웠다. 이 좋은 세상을 누려보지도 못하시고 흙에서 일하시다 흙으로 돌아가셨다. 거칠어진 손이 떠오르며 내 손을 잡아주시며 ‘잘 왔다’ 반겨주시는 것 같았다.

집에서보다 한결 부드러운 바람과 햇볕은 산소 위에 머물렀다. 그 성급하고 조급했던 마음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엄마와 아버지를 뵙게 되어서 마음이 놓이고 편해졌다. 내 마음대로 차려진 음식들이지만 다음엔 더 맛있고 잘 익은 배를 따서 올려드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산소 옆에 기대어 부모님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어릴 적 농사지으시던 이야기와 많은 자식 건사해 주셔서 감사하는 심경으로 산다는 것과 자주 못 와 봬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겨우 술 한잔 부어놓고 눈물 한 방울 뿌려놓는 것이 딸이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을 부모님은 아실까마는.

아늑하고 따뜻한 곳에 계신 부모님 산소를 뒤로하고 또 달려서 내려오며 배나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잘 있어, 안녕” 손을 흔들었다.

기사님께서 과수원을 잘 가꾸어 놓았다고, 너무 보기 좋았다고 하셨다. 나도 줄지어 서있는 배나무들이 좋다. 조금 있으면 하얗게 배꽃이 피고 배농사가 시작되면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산소에 다녀온 것은 내 곁에는 안 계시지만 부모님이 한번 다녀가라고 부르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월’님의 ‘초혼’을 상기하며 내 고향 모든 곳이 급격하게 변해간다 해도 하늘만큼은 그대로일 것이고 부모님은 늘 그 자리에서 자식들을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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