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수필] 미루나무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미루나무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기동취재팀
  • 입력 2024.03.12 15:37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미루나무

어느새 나무를 심는 식목일이 다가오고 있다. 옛날 식목일에는 온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서 나무를 심으러 갔다. 길가나 냇가, 둑, 야산의 야트막한 평지에 나무를 심었다.

4월의 세찬 바람과 눈발이 날리기도 했다. 남학생들이나 선생님들께서 구덩이를 파놓으시면 여학생들은 묘목을 구덩이에 넣고 흙으로 덮고 발로 밟고 흙을 덮었다.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나무를 심다보면 추위도 잊고 땀이 났다. 흙은 축축했고 보드라웠지만 풀들도 자라 있어 풀뿌리가 엉켜있는지 삽으로 구덩이를 파기가 힘들었다. 나무를 다 심고 집으로 돌아오는 신작로에는 길가의 가로수인 미루나무가 봄을 맞이했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신작로를 걸으며 나무를 심은 자부심에 은근히 자랑도 했었다. 비록 심은 나무의 이름도 몰랐지만 내가 심은 나무는 제일 잘 자랄 것이라고 흥분되어 떠들었다. 나뿐만 아니고 모두가 나무를 심은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분명 내일이면 비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어느 날 서울을 가다가 차 안 스치는 창가에서 미루나무를 보았다. 분명 나는 미루나무로 확신했다. 여름이었는데 작은 잎사귀가 햇볕에 반짝였고 키가 큰 것이 우리 동네 신작로나 울타리에 심어져있던 미루나무였다. 너무 놀라서 “미루나무다”하고 기뻐서 소리를 질러대었다. 아직도 남아있다니. 어린 시절 미루나무를 오르내리던 풍경이 푸른 하늘 구름처럼 둥둥 떠 있었다. 차창에 눈을 대고 미루나무가 사라질 때까지 아쉽게 바라보았다.

미루나무는 길가나 울타리에 심어져 어린 우리들이 올라가기도 하고 꺾어서 피리도 만들어 불었다. 나무에 물이 오르는 봄이 오면 나뭇가지를 꺾어서 비벼대면 껍질과 속대가 분리된다. 그러면 껍질을 살살 돌려 빼내어 피리를 만들었다. 새하얀 나뭇가지는 물기를 먹고 반질반질 윤이 났으며 햇빛에 반짝였다. 나무껍질은 적당히 잘라서 끝을 눌러서 껍질을 벗겨내고 피리를 불었다. 소리가 아름답다 운 것은 아니지만 “삐삐”하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입에 물고 다니며 피리를 불었다. 힘 있게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그러면서 동네를 돌아다녔다.

미루나무에 작은 눈이 트기 시작하면 나뭇가지를 잘라 물에 담갔다가 물기가 많은 땅에 꽂아놓으면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잎이 나서 나무로 자라났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약한 나무는 자라면서 썩고 벌레가 끼면서 죽어갔다.

어느 해 신작로 미루나무는 잘려서 트럭이나 마차에 실려 갔다. 왜 나무를 자르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른들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다. 실려 가는 미루나무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버스가 지나가며 풀어놓은 먼지는 나뭇잎에 콩가루처럼 뿌려져 나뭇잎이 누렇게 변색했지만 비만 오면 깨끗하게 씻겨진 나뭇잎이 햇빛에 반짝이며 그늘을 만들어주던 가로수들이 차츰차츰 모습을 감추어갔다.

어린 날을 풍요롭게 해주고 마음껏 뛰놀게 해주었던 몇몇 나무 중 미루나무는 빈센트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나무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음에 심어져 있다.

저작권자 © 경기도민일보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