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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달달 무슨 달/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수필] 달달 무슨 달/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 기자명 기동취재팀
  • 입력 2024.03.0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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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달달 무슨 달

[경기도민일보미디어 기동취재팀 ] 차갑고 어두운 농촌 길을 환하게 비춰주었던 정월 보름달. 보름이 되면 더 춥고 쌀쌀하지만 그래도 남산 위의 둥근 달을 보기 위해 논둑에 짚단을 놓고 불을 놓으며 몸도 녹이고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우리 동네의 남산에서 달이 떠오르면 불더미를 쑤셔대던 막대기도 집어던지고 달을 맞이하였다. 아마 그게 쥐불놀이인 것 같았다. 어른들께서는 야단을 치시며 불을 끄라고 소리를 지르시며 달려 나오셨다. 그러나 불이 날 염려는 없다. 드넓은 논 한가운데서 아무리 바람이 분다 해도 불이 번져 불이 날 염려는 없었다.

명절이 지나며 우리는 달맞이 준비를 했다. 동네 오빠, 친구 모두 동네 마당에 모여서 깡통에 구멍을 뚫어 철사로 줄을 묶어놓았다. 짚단을 갈라서 묶어놓고 솔방울과 관솔을 집에서 가지고 나와 쌓아놓았다. 

보름날이 오면 아침부터 알지 못할 설렘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날만큼은 여자라는 규제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날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 남의 집에 가지 마라, 가게도 제일 먼저 들어가지 마라, 안경을 쓰지 마라, 저녁이면 나가지 마라.

어느 날 샛문을 열고 나가려하는데 문이 안 열렸다. 아무리 힘을 쓰고 밀어보아도 잠가진 대문 같았다. 그렇다고 못 나가겠는가. 밖에 있던 친구들이 엉성한 울타리를 뚫어주었다. 한마디로 개구멍이 생긴 것이다. 나갈 때나 들어올 때면 나뭇가지로 살짝 가려놓았다. 반질반질 닳은 개구멍을 부모님이 먼저 아셨을 것이다. 모른척하실 뿐. 그러나 샛문은 밖에서 보니 깎지 동을 쌓아서 완전히 막아버렸다.

대보름날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어른들도 밖으로 나와서 달구경도 하고 소원도 빌었다. 모두 어울려 불놀이도 하고 깡통에 불을 지펴 돌리면 지금의 불꽃놀이 같았다. 볏짚을 수북이 쌓아놓고 불을 붙이고 대낮처럼 환해지는 들판이 된다. 일부러 불 옆으로 가서 깡충깡충 뛰면서 뛰어다녔다. 어둡던 들판은 세상의 빛은 다 몰려오고 여명의 붉은 하늘 같았다. 따끈한 모닥불처럼 정신없이 타오르는 불길은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마음의 빚이었다. 

정월 대보름 전날인 열 나흗날은 갖은 나물과 오곡밥을 지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맛있게 먹기도 했으며 보름날에는 아침 일찍 더위팔기도 하고 부름을 깨뜨려 먹었다. 땅콩을 껍질째 볶아 먹거나 밤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귀밝이술도 한잔씩 돌려가며 먹기도 했다.

드디어 저 멀리 지평선 위에 달이 떠오르는 빛이 번져 가면 모두는 “와”하고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했다. 나의 어린 시절이 가장 환한 빛을 내며 나를 향하여 어디선가 나오고 있었다. 손톱만 했던 달이 점점 자라나서 아주 붉게 우리들의 얼굴에 닿으면 서로 바라보며 불이 붙은 짚단을 들고 흔들었다. 일제히 깡통에 불이 활활 타오르며 돌려지고 환호가 우렁차게 온 동네를 감싸들었다.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이 머리 위까지 올라와 온 동네가 환해지면 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잤다.

아침에는 가마니 솥에 더 많은 물을 데워주셨다. 검은 연기에 그을은 얼굴이며 손이 새까매지고 나일론 잠바는 구멍이 나있어도 혼이 나지 않았다. 뜨거운 물에 찬물을 섞어서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다.

보름날은 어린이들의 날이다. 재미있는 불놀이도 하고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전부지만 우리는 한없이 기쁘고 즐거운 날이었다.

아쉽게도 모든 게 기억 속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세월은 아무리 느리게 흐른다 해도 느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소원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달맞이를 했고 기뻐했다. 지금에서 그 기억으로 들어간다면 감사하는 뿌듯한 감정에 큰절을 달님에게 했을 것이다. 

정월 대보름, 명절이지만 점점 잊혀져가도 그 시절을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다. 밝고 둥근달이 머리 위로 떠오를 때 가슴에 품었던 꿈이 보름달로 커지고 있음을, 기쁨이 가슴을 가득 채우며 살아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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