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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야기꽃은 겨울에도 핀다/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수필] 이야기꽃은 겨울에도 핀다/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 기자명 기동취재팀
  • 입력 2024.01.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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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이야기꽃은 겨울에도 핀다

우리는 여러 번 만남의 자리를 시도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몇 명 안 되는 손가락을 다 펴도 모자라는 4명이 각자의 생활에 묻혀 살다보니 날짜 잡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다. 사계절 중 꽃피는 봄이거나 울긋불긋 낙엽이 온 산을 물들이는 가을을 상상하며 생각날 때마다 연락을 하지만 모두 날짜가 달라 한자리에서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멀리 사는 것도 아닌데 마음만 있다면 당장 뛰어올 거리인데도 일 년이 지나고 새해에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야 보통 잘 지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반가워하며 묻는다. 손을 잡고 식당을 찾으러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다가 겨우 찾아낸 것이 요즘 강원도에서 잘 말려진 명태 요리인 코다리찜을 선택하고는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 직원분이 간신히 자리를 마련해주어 자리를 잡았다.

음식이 나오기 전 잠깐씩 덕담을 나누고 그동안의 집안일이라던가 생각나는 대로 몇 마디 나누고는 푸짐한 코다리찜을 식탁 가운데 놓고는 서로 많이 먹으라고 슬쩍슬쩍 밀어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모임과 오랜만에 먹는 코다리찜이 잘 어울려서 맛있게 밥 한 공기를 비웠다

오늘은 많이 이야기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는 기대에 찬 새해의 희망까지 올려놓았다.

공원이 보이는 찻집을 찾다가 지쳐서 길가의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상기된 얼굴로 소녀처럼 쑥스러워하며 이야기를 하고 듣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살짝 주름진 얼굴이 미소로 펴지고 서로를 바라보며 바쁜 일상을 토로하였는데 모두는 취미생활과 여행 때문에 만남의 자리가 소홀해진 거 같다고 했다. 집 밖을 나가기가 두려워진다고 했다. 웬만한 식당은 로봇이 음식 서비스를 하고 식탁마다 메뉴기가 달려있어 한참을 생각하고 그래도 안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메뉴를 선택해야 하니 말만 하면 갖다 주고 치워주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혼자 어디를 가서 외식하기도 겁이 난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러 가도 예약을 미리 하지 않으면 영화도 못 보게 됐다고 어쩌면 좋으냐고 서로 옛날이야기에 초점을 맞춰간다. 시외버스를 타려 해도 예약을 해야 하고 티브이 뉴스를 보더라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젊은이들의 어려운 대화에 기가 죽는단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티브이를 보다가 MZ세대라는 아나운서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일까. 누구에게 물어보자니 창피하고 자식한테 물어보자니 더 창피했다. 이래서 들고 다니는 핸드폰이 유용하게 쓰인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충 군사정권을 겪지 않았거나 민주화 이후의 신세대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한마디로 10대 초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젊은이를 말하는 것 같다. 실제로 풀이한다면 너무 광범위하다. 우선 젊은 사람이라고 머리에 입력해놓는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대들 앞에서 나이 많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된다. 카페를 가도 눈치가 보이고 식당을 가도 맘이 편치 않으니 같은 또래의 우리들이 모여서 겪었던 이야기꽃을 피우고 숨죽여 웃는 것이다.

나이가 있어도 늘 아쉬워하는 건 책 한 권 못 읽었다였다. 만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대화의 끄트머리에 달리는 꼬리 같은 길게 늘어진 삶의 한계인 것이다.

올해는 빠르게 만남이 이루어져서 허전했던 마음 어딘가를 채우고 왔다. 디지털시대니 MZ시대니 하는 용어에 낯설어하고 서먹해지는 것이 당연하고 조금이라도 빠른 정보에 대응해야 식당을 가더라도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고 커피도 기계 앞에서 당당하게 주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여인네들도 살판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추운 겨울 웃음꽃을 봄꽃보다 더 향기롭게 한 아름 안고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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