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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기다림을 위한 가을, 낙엽의 날갯짓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수필] 기다림을 위한 가을, 낙엽의 날갯짓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11.0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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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기다림을 위한 가을, 낙엽의 날갯짓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보았다. 무심결에 올려다본 하늘은 맑고 파랗다.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흰 연기를 길게 줄을 그려놓았다. 깨끗한 하얀 도화지에 그렸던 하늘이 넓게 펼쳐졌다. 이렇게 파란 하늘과 함께 낙엽이 가을바람에 날아가 살짝 잔디 위에 앉은 모습을 보았다. 

아직은 여름 그대로 같은데 하룻밤을 자고 나면 초록이 노랗거나 빨간 잎으로 변해있다. 시간의 급격한 변화를 누군들 모르지는 않겠지만 막상 그 흐름은 온통 한 곳으로 밀려가게 하는 힘이 있다. 온통 그 생각이 온몸으로 번질 때의 짜릿함이랄까 설렘 같은 것이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풍경들은 쉴 새 없이 변화를 부른다. 구름처럼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몰려간다. 아무 말 없이 응시하는 침묵 속에서 쌓여가는 낙엽을 가볍다고 할 것인가.

나뭇가지들은 한철을 함께했던 잎들을 떠나보내면서 붙잡아주고 싶은 절실함은 없을까. 낙엽은 아무런 고백도 하지 않은 채 흩어져 날려간다. 떨어뜨려 날려 보내는구나 하고 날리는 낙엽을 재빠르게 바라보면 어느새 어디론가 철새처럼 가버리고 없다.

낙하만이 있는 고요한 숲에는 사람들이 아픔을 삭이며 살아가듯 서로를 보내는 움직임들만이 있다. 바람이 없어도 낙엽은 진다. 삶이라 부르고 운명이라 부르는 생각들이 엉켜버려 나뭇가지는 보내는 것이고 낙엽은 방황하는 나를 향하여 손짓하듯 우수수 한꺼번에 낙하하는 것일 것이다. 무심히 떨어지는 낙엽을 아주 이쁘게 바라보며 쌓여있는 낙엽은 빠르게 흘러가는 우리만의 약속처럼 숨겨져 차곡차곡 모여 있는 영혼 소리를 듣는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도 이슬비에 옷이 젖듯 마음으로 스며들어 기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한 마음의 변화에 낙엽은 길가를 화려하고 멋진 그림으로 물들여간다. ‘잠깐만요, 내 말 좀 들어줘요, 나를 보아 주세요’ 하듯이.

계절도 비처럼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가을의 바닷물이 더욱 파란빛을 띄우는 것도 그렇고 바람도 잔잔하다 파도치듯 밀려오는 바닷가의 해변도 그렇다.

가을이면 바다로 흘러든 담수와 염수가 만나는 지점의 솔트 라인(Salt Line)처럼 단풍의 경계를 보게 된다. 특히 올해는 기후와 관계가 있어서인지 단풍이 곱지가 않다. 그래도 우리는 단풍 구경하러 간다. 로키산맥 같은 높은 산에 가보면 수목 한계선을 말하는 트리 라인(Tree Line)도 있다고 한다. 이 역시 기후의 변화에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경계선이 존재하여 수시로 변하듯 사람의 마음도 변화가 찾아와 밋밋한 단풍의 경계를 아주 많이 감탄하며 바라본다. 마음과 단풍이 한마음이 되어 천천히 가을을 맞이하듯 모두가 느끼는 가을의 감정인 쓸쓸함과 외로움과 이별을 잊게 해주는 낙엽의 낙하를 보며 두 손을 모으고 받아내고 있다.

가을은 봄의 희망을 품고 있던 잎들이 나뭇가지들과의 이별이 아니라 다시 만날 재회를 꿈꾸며 스스로 떨어져 어디론가 날아가거나 쌓여있는 것이다. 은행잎이 인도를 덮고 아이들이 은행잎을 받는다고 손을 내밀며 뛰어다니고 있다.

환상처럼 환한 은행나무 길은 그 길을 걷는 이들을 설레게 하고 가을의 풍경이 가슴에 스며드는 순간을 느끼게 해준다. 

가을 야생화가 하늘거리고 낙엽이 비처럼 쏟아져 흩어질 때 나는 낙엽의 무게를 철새의 날갯짓에 올려놓았다. 나목의 겨울이 떠오르면서 낙엽들의 생애가 기다림으로 연결되는 가을인데 왜 난 자꾸만 울먹여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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