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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돌아온 택배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수필] 돌아온 택배 /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 기자명 기동취재팀
  • 입력 2023.10.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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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시인) 서정여성문인회 회장 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돌아온 택배 

20년이 훌쩍 넘은 복도식 아파트에 산다. 내가 사는 동네는 전국의 모든 아파트값이 고공행진을 할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곳이고 주민 누구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가끔 우리 집에서 아래층으로 물이 새고 또 위층에서 물이 흘러나와도 그러려니 하고 크고 작은 공사를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소리가 요란해도 누구도 말이 없이 산다.

아파트 나이 탓일까. 주민 평균 나이도 많다. 다른 새 아파트로 이동을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평화롭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는 주민들도 고령이라 말씀이 없으시고 목례로 대신한다. 젊은 사람이 없으니 늘 적막감이 깔려있다. 아이들 소리가 안 들리니 바람 소리, 자동차 소리도 정겹다.

그중 제일 현대적인 혜택을 누리는 것은 택배로 물건을 받는 것이다. 마트에서 물을 구매해도 적은 양이라 배달도 못하고 들고 온다. 하지만 택배로 물건을 구매하면 저렴한 것도 집 앞까지 갖다 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아파트에 오래 살다보니 대화는 안 해보았어도 우리 아파트 분이라는 것은 안다. 길을 걷다가도 아는 얼굴이니 반가워한다. 세상이 변하여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지만 복도식이라 여름이면 현관문을 거의 열어놓고 산다. 그러다보니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면 들어와 커피를 마시고 가라고 잡아끌어 들어가서 커피믹스 한잔 마시면서 일어설 줄 모르며 약속도 잊고 수다를 떤다. 아들 내외가 다녀갔고 손녀가 화장품을 사왔다느니 몸이 예전과 다르게 아프다는 등 일상적인 이야기이지만 새로운 이야기로 듣고 답하다보면 눌러앉게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노인분들에겐 외롭고 쓸쓸함을 슬그머니 내비치는 것이다. 지나간 이야기도 숨도 안 쉬시며 말씀을 하시는데 일어날 수가 없어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할머니 저번 바람 많이 부는 날 택배를 문 앞에 놓아두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마침 바깥에서 일을 보고 있어서 저녁에 왔는데 택배가 없어서 택배기사님한테 전화했더니 문 앞에 놓았는데 바람에 날아갔나 하여서 전화를 끊고 복도를 다 돌아다녀 보아도 없더라구요.” 할머니께서는 “바람이 그리 부는데 문 앞에 놓아두면 어째, 경비실에 맡겼어야지” 하셨다.

그날 나는 복도 처음과 끝까지 내려가서 꽃밭까지 다 찾아보고 경비아저씨께 혹시 택배 날아다니는 것 보았냐고 묻기까지 했다. 듣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궁금하신 듯 “그래 찾았어” 하신다. 

다음날 포기하려고 택배기사님한테 전화를 걸까하고 있는데 현관 벨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못 보던 젊은 아줌마가 택배 봉지를 들고 있다가 주면서 “우리 집 택배 속에서 나왔어요. 자세히 안 보았으면 몰랐을 거예요” 하면서 가는데 뒤에서 고맙다고 소리쳤다. 택배 봉지를 가져온 마음이 나를 따뜻하게 했다.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할 걸 후회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할머니께서는 뭐를 산 건데 하시면서 재차 물으셨다. 그때야 “할머니 속옷을 산 건데 누가 보면 얼마나 창피했겠어요.” 할머니께서는 웃으시면서 “맞아, 나이를 먹어도 창피하지!” 하시며 맞장구를 쳐주셨다.

아마 바람은 불고 가벼운 물건이라 다행히 밖으로 날아가지 않고 복도 바닥으로 밀려가서 복도 끝 집 택배 더미에 끼워진 것 같았다. 

“아저씨, 택배 다른 집에 있다고 가져와서 찾았어요.”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화를 걸었다. 택배 물량도 많고 날씨도 추운데 고생하시는 택배아저씨들께 늘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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