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발 아래서' 출간 송금호 작가 인터뷰
'권력의 발 아래서' 출간 송금호 작가 인터뷰
  • 이태현 기자
  • 승인 2019.11.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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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풀리즘에 대한 경각심 깨우치고 싶어 집필”
“우리사회 민주주의 핵심가치 인권보호 관심가져야”

송금호 작가
송금호 작가

Q.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려는 것인가요?
A. 권력자들이 국가권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짓밟는 모습과 검찰과 법원의 사법적폐의 모습,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국가기관의 모습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최근 세계적으로 다시 꿈틀거리는 우익 포플리즘에 대한 경각심을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싶습니다. 우익 포플리즘은 국가 또는 국가권력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고 짓밟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예,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또는 일본제국주의)

Q. 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시려는 주요 인물은 누구 누구이며, 이 인물의 삶 또는 사고를 통해 독자에게 던지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A. 윤태식이라는 한 개인과 수지 김 및 그의 가족들, 이들을 짓밟은 국가기관의 구성원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또 윤태식과 우연히 조우하는 김대업과 검찰, 법원의 구성원들도 주요인물들입니다. 소설은 윤태식의 기구한 삶의 역정 속에 얽혀있는 사실들을 통해 첫째, 국가기관의 간첩조작과 고문 등 인권침해를 고발해서 민주주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도록 합니다. 둘째, 윤태식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나타나는 검찰 및 사법부 적폐의 구체적인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이 시대 화두가 되고 있는 검찰 및 법원의 개혁을 이루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셋째, 언론과 정치권력 등 기득권 세력들이 잘못된 행위를 한 뒤에도 자기반성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꼬집어서 이들 적폐의 고발 및 청산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Q. 소설 속에 나타나는 '인간'에 대한 물음은?
A. 이 부분은 저의 단상으로 대체합니다. 개인은 국가라는 집단을 구성하는 소중한 일원이지만 때로 잘못된 국가권력에 의해 이용되거나 파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개인은 사실상 불가항력이다.
 나는 과거 국가기관의 불법과 부당함속에서 개인의 삶이 파괴되고 공정이 무너지고 기득권 세력들끼리의 야합과 모의가 판을 치는 것은 오늘의 현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인간이 생존하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집단을 구성하면서부터 개인은 집단의 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에 의해 그 권리가 침탈당해 왔으며 민주주의는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고 아직도 인류는 민주주의 핵심가치인 인권을 보호하고 찾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경제가 아무리 발전하고 문화가 융성해지더라도 인권의 문제는 지구상에 항상 존재할 것이다. 사형수에게도 인권이 존재하듯이 윤태식이라는 사람에게도 인권이 존재한다. 설령 그가 아내를 죽게 했더라도 그는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물며 안기부의 공작과 고문으로 인해 쓴 자술서를 근거로 살인죄로 기소되고 또 유죄판결을 받은 윤태식은 사실상 국가와 사회로부터 린치를 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너는 부인을 죽인 놈이니 당해도 싸다'라는 비난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그 같은 무정한 비난은 옳지 않다.
 요즘 진범이 밝혀지면서 드러나고 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의 억울한 피해자들을 보라. 당시 성추행용의자가 성폭행살인자로 둔갑돼 기소까지 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십 년간 옥살이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국가기관인 경찰과 검찰 내부 누구도, 아니 언론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인권문제를 제대로 다뤘다면 폭행과 고문으로 허위 자백한 억울한 피고인을 무기징역을 선고해서 감방으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윤태식은 참회한다. 고의로 아내인 수지를 죽이지 않았지만 그녀를 죽게 한 죄는 사람으로서 영원히 씻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징역을 적게 살거나 많이 살거나 아님 사형을 당하는 것은 폭행치사죄냐 살인죄냐 하는 법조항 적용의 문제이고, 자신은 수지를 죽게 한 그 죄로 인해 인간으로서 못할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어떤 형사법조항을 적용하더라도 의미가 없는 중죄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똑같은 죄인인데도 어떤 논리나 증거로서 대응하느냐에 따라 죄목이 달라지고, 선고 형량이 달라지고 하는 등의 문제이다. 국가권력이 개입된 사건이라면 개인은 무참히 짓밟히는 경우가 허다하고 유능한 변호사나 로펌을 선임하면 불기소 또는 무죄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고질적인 법조 적폐의 문제다. 책에서는 이런 문제도 다뤘다.
 요즘 우리는 자신의 일이 아니면 무관심이다. 그 일이 민주주의 핵심가치인 인권이라도 말이다. 악성댓글로 인해 개인의 존엄성이 파괴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기실 인권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인권침해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한다. 인권은 국가권력으로 인해 침해당한다는 기존의 관념이 아직도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다. 윤태식의 경우 살인죄 기소를 하면서 특수부 검사들이 투입돼 이른바 윤태식 게이트라는 수사를 벌인다. 거액의 로비자금을 만들어 정관계인사들에게 뿌렸다는 혐의였다. 이른바 먼지 털이 식 수사였다.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했고 세상 사람들은 운태식을 올바른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이른바 언론사 세상사람들의 마녀사냥이었다. 검찰의 피의사실공표죄를 별건으로 하더라도 언론과 세상 사람들의 윤태식에 대한 인권침해는 어떤가?
 필자는 '그놈은 그래도 싸다'라는 사람들의 인식을 단연코 배격한다. 집단의 권력자와 기득권자들은 바로 이런 인식을 이용해서 권력 잡기에 나선다. 독재정권 시절 많은 민주인사와 형사 피의자들이 이런 잘못된 인식 바탕에서 억울한 피해를 당했다. 이래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있어서 절대로 후퇴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이 소설의 내용에 윤태식 개인의 변명이 상당히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사람의 기구한 인생역정 속에서 소설의 주제와 의미를 찾다보니 다소 구구절한 얘기들이 담겨져 있다.
 나는 글쓰기에는 초보이지만 소설이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많이 강조하다 보면 자칫 어설픈 다큐로 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완벽성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독자에게 흥미를 주고 그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얘기 거리를 세상 사람들이 뒷공론을 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보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단호하고 분명한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행간에 살짝 비치는 메시지가 오히려 독자들에게 한 번 더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
 이 소설이라는 것을 쓴 뒤에 20번 이상을 읽었다. 읽을 때마다 고치고 싶었고 끙끙거리면서 문장과 씨름했다. 초보라서, 아니 내입으로 작가라는 말조차 꺼내기 부끄러운 이야기책을 갖고 출판이라는 겁 없는 일을 추진하면서 많이 배웠다.
 어쨌든 이 이야기책으로 인해 많은 경험을 얻었으며, 인생의 소중함을 느꼈다. 나는 윤태식의 얘기가 마치 나의 얘기이고 이 나라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한 것들이 다 모여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이 책 한권에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담으리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한 것 같았다. 윤태식과의 인터뷰와 사건관련 자료를 살펴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큼 그의 인생은 특별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오만(傲慢)이었고 불가능이었다. 그것을 다 담으려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고 이야기책을 다 쓰고 나서는 마치 무슨 큰일을 해 낸 것처럼 으쓱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 이래서 경험과 배움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요즘 주변의 소중한 분으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다. 그래서 이런 자각(自覺)도 하는 것이 아닌가.
 무작정 나선 길손처럼 걷다가 얻어먹기도 하고, 가다가 얻어 유숙도 하고, 길에서 보면서 배우고 길에서 체험하면서 느끼기도 하나니 이 무모함이 오히려 나를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자불민(驕恣不敏)한 까닭에 아직도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 못함을 어이하랴. 그래도 나이 60이 넘어가니 눈치는 좀 생겨서 내 사정을 알아차리는 정도는 될 성 싶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면 나는 '그냥 약간의 사회적 의미가 있는 그저 읽을 만한 소설책'으로 평가를 받으면 최고로 좋을 것 같다. 나는 아직 책 쓰는 것에는 유치(幼稚)하고 세상의 이치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경기도민일보, KG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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