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순정’ 박일남 묵직한 저음 매력
‘갈대의 순정’ 박일남 묵직한 저음 매력
  • 김영천기자 
  • 승인 2019.02.10 14: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가요계 원로 역할 올 인 

[경기도민일보=김영천기자] 한국 가요계의 원로, 전국예능인노동조합연맹 박일남(朴一男ㆍ사진) 위원장. 그는 젊은이들한테 ‘갈대의 순정’을 부른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인 가수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중년 이상 여성과 남성들 사이에선 아직도 많은 인기를 누리며 우리 가요를 개척하고 지켜낸 산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국대 불교철학과를 나와 1963년 ‘갈대의 순정’으로 데뷔한 박 위원장은 부산 태생이다. 1964년 1집 앨범 후 ‘엽서 한 장’ ‘그리운 희야’ ‘정 주고 내가 우내’ ‘마음은 서러워도’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가수로서의 꿈을 꾸고 그 길을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1960년대 초반 어느 해 설날 한 클럽 악단이 부평의 ‘백마장’이란 곳에 연주하러 가는데 따라가 무대에서 냇 킹 콜(Nathaniel Adams Cole)의 ‘모나리자’를 불렀더니 앙코르를 네 번이나 받았다는 것. 

클럽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킹레코드 관계자 눈에 들어 이때부터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에 버금갈 정도로 당시 인기를 구가한 ‘갈대의 순정’, 공식적으론 30만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00만장이 팔렸다는 후문이다. 일약 국민가수 반열에 올라섰다. 

이어 후속곡 ‘엽서 한 장’도 크게 히트를 쳤다. 부르는 노래마다 승승장구하며 그야말로 1960~1970년대를 주름잡으며 박 위원장만의 사회 활동과 가수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에게 잊지 못할 기억 역시 셀 수 없다. 시대의 격변기를 살면서 가수로서 또는 사업가로서 그의 삶은 결코 엘리트 가수로서의 꽃밭 인생이라고는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 나락으로 떨어졌던 시기를 살기도 했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박 위원장을 힘들게 하기도 했으나 그는 천성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더불어 사는 성격이라 봉사자로 나서면서 큰 변화의 길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가수협회 회장을 지낸 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어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마디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시기에 모자람이 없는 가수들의 노조라는 비난마저 받으며 일구어낸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국예능인노동조합연맹에서 지금까지 큰 역할을 맡아 굵직한 일을 계획하고 해결하며 젊었을 적 못지않은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전국예능인노동조합연맹은 1988년 9월에 설립해 1999년 연맹으로 탄생했다. 그간 조합원들을 위한 각종 사업은 물론 전국 예능인 귀농귀촌 창업교육 및 프리미엄 펫케어 서비스와 반려동물친화 레저시설 조성사업 등 많은 일을 해오고 있다. 그 중심에 박 위원장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