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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노영희 시인 '가버린 시간은 아름다웠다'

[수필] 노영희 시인 '가버린 시간은 아름다웠다'

  • 기자명 경기도민일보
  • 입력 2023.01.0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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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 시인 / 서정여성문인회 회장·화성시 은빛독서나눔이

노영희 시인
노영희 시인

[경기도민일보 미디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먹먹한 그리움에 또 한 해를 맞이한다. 지금은 내가 사는 곳이 고향이 되어버린 것 같다. 서먹함과 어설픔, 어색하고 낯섦도 모두 삭혀져 잔잔한 물결처럼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함께했다. 

몇 년 전부터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가 바닷물을 빨갛게 물들이며 번져갈 때 순식간에 커다란 노랗고 붉은색의 해가 수평선에 걸쳐있거나 눈 깜짝할 사이 솟아올라 해맞이하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기도와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바닷가에서 한 해를 맞이했다. 나이가 들면서 움직임이 굼떠지고 게으른 몸 때문에 베란다에서 해맞이한다. 아니면 공원의 높은 곳에서 도시의 해맞이로 바뀌었다.

파도 소리와 함성과 망망대해 바닷모래에 서서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해가 뜨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날씨가 좋아야 볼 수 있는 그 새로움에 젖어드는 여명의 바다를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돌아왔다. 마음의 눈으로 그어놓고 온 수평선은 한 뼘의 거리만큼에서 어른거렸다.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미움과 상처의 경계선을 지워버리려 애쓰며 웃음을 나누며 산다. 지난 시절 같은 붉은 태양이 노란빛으로 바다를 감싸 안을 때면 다시 멀어져가는 지난날을 밀물처럼 밀어내며 새날이 시작된다.

어두움을 조금씩 벗겨내며 햇살은 나를 비추고 내 마음을 다시 새롭게 추스르고 물새가 된 듯 가볍게 하늘을 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해는 커다란 희망을 자신감 넘치도록 담아두는 것이다.

베란다에서의 해맞이는 우연히 찾아왔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인지 오랜 시간 차를 타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만 남기로 하고 전날 강원도로 흥분한 얼굴빛을 감추지 못하고 식구들이 떠나갔다. 감기약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며 기운이 없어 누워 있는데 티브이에서 제야의 타종을 하는 방송이 나왔다. 잠에서 깨어나 무심히 그 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꼭 해맞이는 바다에서 하란 법이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거실 문을 열고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일러서일까, 하늘은 어둡고 추웠다. 다시 들어와서 해 뜨는 시간을 알아내고 다시 나갔다. 멀리 센트럴파크의 메타폴리스 네 건물 뒤쪽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꼼짝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서서히 붉은빛은 바닷물에 스며들듯 검은 건물을 더욱 검게 물들이고 건물은 거대한 산처럼 우뚝우뚝 솟아올랐다.

어둠은 해뜨기 직전이 더 춥고 어두워지나 보다. 새카맣게 붉은 하늘을 건물 뒤로 감추고 안개처럼 번지는 여명이 건물들 앞으로 다가왔다. 서있는 나의 자리까지 와서 눈을 부시게 했다. 그 주홍색의 새해의 태양이 건물 사이로 빛에 싸여 하늘로 번져나갔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 아름다운 빛과 새해의 감격이 감동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순식간에 아침의 햇살로 살아난 햇살이 거실로 달려들어 왔다. 소파에 앉아서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세상의 빛들이 다 모여서 한 곳을 비추는 신비함을 보았다. 

2023년 계묘년은 햇살처럼 밝고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뻐하고 아쉬움이 있다면 열매를 맺도록 마음을 다독여야겠다. 나쁜 일들은 멈춰버리고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건강하고 걱정이 없어졌으면 한다. 친구들도 만나러 가고 안 해본 일이 있으면 도전도 해보고 새롭게 시작하는 기쁨도 누려봤으면 한다. 

일출을 보러갔던 식구들이 초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길도 정체되고 시간이 부족해서 가보고 싶은 곳을 못 갔다고 투덜댔다. 10년 전 사진과 오늘 찍은 사진을 보며 사진 탓을 하는 가버린 시간을 불평하는 딱 그 시간의 거리를 잊은 듯 “엄마 감기는 다 낫나보네. 하루 새에 쌩쌩해 보이는데요”하며 농담하듯 놀렸다. 애들이 된 듯 몸이 가볍고 올해의 일들이 휙휙 봄바람으로 불어왔다. 올 한 해 소원 이루시고 또 모두 모두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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